역사와 음악이 결합된 럭셔리 앨범 예루살렘(AVSA9863)에 이어, 이번에는 문명의 십자로 이스탄불로 떠나는 사발과의 음악여행이다. 디미트리에 칸테미르(1673-1723)는 대귀족의 일원이었던 몰다비아공 콘스탄틴의 아들이다. 10대 후반부터 몰다비아공이 되기까지 거주했던 이스탄불에서 각국의 역사와 언어(11개 국어를 이야기하고 쓸 수 있었다), 동양의 음악이론 등을 공부하고, 터키 음악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었다. 또 독자적인 화음 표기법을 고안해내 자작곡을 포함해 수많은 곡을 남겼다. ‘문자를 사용하는 표기법에 의한 음악서’라는 제목의 이 손수 쓴 원고에는 약 40곡에 이르는 자신의 작품 외에도 기악곡이 약 350곡이 수록되어 있어 오스만 투르크시대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르디 사발과 에스페리옹 21은 문화적 음악적으로, 동양과 서양이 그때까지 유지하고 있었던 동질성이 분리되기 시작한 순간을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통해 재조명하려한다. 이 손수 쓴 원고로부터 7곡, Taksim이라고 하는 즉흥곡이 8곡 그 외 세파르디와 아르메니아의 전통곡 등이 수록되어 있다. 동양과 서양,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놀라운 중동의 도시 이스탄불의 거대한 양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으며, 음악의 다중성과 다양성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조르디 사발 또 하나의 역작이다.

녹음: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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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조르디 사발이 자신의 레이블인 알리아 복스를 통해서 펼치는 음악여행은 이제 더 이상 클래식이나 월드, 혹은 민속 음악이라는 구분을 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에 도달한 것 같다. 사발은 옛 악기나 연주법의 부활이라는 일차적 관심을 넘어 이를 통해 다양한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우리 시대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신보인 ‘이스탄불’ 역시 마찬가지인데, 유럽, 아랍, 유대 등 다양한 배경의 음악가들이 함께 모여 지중해권 문명의 음악의 근원과 역사를 총체적으로 탐구한다는 점에서 전작 ‘예루살렘’과 같은 컨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디미트리 칸테미르(1673~1723)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비록 전처럼 호화판 책자 구성은 아니지만 선곡의 짜임새나 음악적 흥미는 ‘예루살렘’은 물론 ‘콜럼부스’나 ‘프란치스코 사비에르’보다 월등히 뛰어난데, 그 이유는 칸테미르 자신이 음악가이자 이론가로서 직접 작곡을 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높이 평가했던 터키(오토만) 음악을 300곡 이상 집대성한 방대한 문헌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사발이 걸어온 길을 볼 때, 오랫동안 이스탄불에서 인질이자 외교관으로 살았고 훗날 러시아의 귀족이 된 칸테미르는 그야말로 기필코 마주치게 될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사발은 이 음반에서 칸테미르의 작품과 그가 기록한 터키 음악을 중심으로 그외 18세기 이스탄불에서 두드러진 문화 집단이었던 아르메니아 및 세파르딕(유대) 음악을 함께 엮었다.

여러 나라에서 모인 민속 음악가들로 이루어진 아랍 마캄(maqam) 앙상블의 합주는 매혹적이며, 특히 개별 작품 앞에 붙은 우드, 리라 등의 즉흥연주나 구전 선율을 바탕으로 한 합주는 때때로 본편을 능가할 정도로 아름답다. 낯선 음악이 많아서 처음에는 좀 헷갈리거나 다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좀 들더라도 자세하고 친절한 내지를 읽으며 음악을 꼼꼼히 듣는다면 분명 환상적인 경험을 하리라고 장담한다. 옛 음악의 아름다움과 동서양이 교차하는 역사적 배경,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 시대의 음악이 하나로 녹아든 멋진 음반으로, 사발의 최근 음반들에 만족하지 못한 애호가들에게도 추천한다.

- 월간 La Musica - 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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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ITRIE CANTEMIR - ISTANBUL/ HESPERION 21, JORDI SAVALL [이스탄불: 문자를 사용하는 표기법에 의한 음악서-칸테미르 저] [SACD HYBR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