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DWIG VAN BEETHOVEN - BACK FROM THE SHADOWS/ FRIEDRICH WUHRER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소나타 - 프리드리히 뷔흐러]

프리드리히 뷔흐러(피아노)

어둠속에 감춰져 있던 명연주자들을 재조명하는 타라의 새로운 시리즈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뷔러이다.

20년대 현대음악인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등의 스페셜리스트로 뛰어난 기교를 자랑하고, 50년대부터 복스 레이블을 통해 낭만주의 피아노 협주곡의 전설적 녹음을 남겼다.

여기에서는 50년대 후반 베토벤 녹음을 담고 있는데, 그의 강인하면서도 정교하고, 낭만적 감수성으로 가득한 놀라운 피아니즘을 피아노 협주곡 전곡과 마지막 3개의 소나타로 확인할 수 있다.

거장들의 숨겨진 방송용 녹음을 발굴하는 시장은 이제는 레드 오션으로 변해버렸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타라의 위상도 이젠 예전만 못하다. 타라의 새로운 기획인 “Back from the shadows" 시리즈에는 이런 고민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즉, 유명한 거장들의 숨겨진 녹음이 아니라, 잊혀진 거장들의 잊혀진 녹음을 새로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리즈의 첫 번째 주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뷔러다. 뷔러는 1940-50년대의 전성기에는 가장 중요한 독일-오스트리아계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혔던 만큼 타라의 재조명은 전적으로 합당하다.

뷔러는 최초로 ‘전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던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시리즈를 비롯해서 다수의 베토벤, 브람스 녹음을 남겨두었다. 문제는 그의 음반들이 대부분 복스 (Vox)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이번 세트에 담긴 베토벤 녹음 역시 모두 복스 음원이다. 필자는 복스에 대해 항상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전후에 클렘페러, 로스바우트, 호렌슈타인 같은 거장들과 브렌델 같은 신예를 알아보고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 녹음을 기획한 안목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도대체 그 엉망인 녹음들이란! 필자는 50-60년대 사이의 복스 녹음에 만족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1950년대에 녹음된 이번 음반 역시 마찬가지다. 즉, 평면적이고 생명력이 없으며 신경질적인 전형적인 복스의 50년대의 녹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싸구려 녹음을 뚫고 나오는 뷔러의 피아니즘은 생동감 넘치는 활기와 고전적인 건축미가 멋지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특히 1번과 2번 협주곡의 거침없는 혈기는 잠시나마 싸구려 음질을 잊게 해 준다. 뷔러는 1번 협주곡에서 베토벤이 남긴 3개의 카덴차 중에서 가장 긴 버전을 택했는데, 카덴차의 무게감은 거의 브람스적인 느낌을 줄 정도다. 이 연주가 데카나 RCA 엔지니어의 힘을 빌렸더라면 분명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의 중요한 레퍼런스가 됐을 것이다. 어쨌거나 뷔러는 복스를 택했다. 게다가 지휘자들의 반주는 하나같이 무뚝뚝하고 지루하다.

브로니수아프 짐펠이나 요제프 슈스터(슈스터는 뷔러와 함께 복스에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남기기도 했다) 같은, 또 다른 잊혀진 거장들이 함께 등장하는 삼중협주곡은 독주자 리스트만으로도 흥분을 불러일으키지만, 오케스트라나 독주 악기의 색깔을 거의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녹음 때문에 흥분은 금방 가라앉고 만다. 켐프의 시적인 감흥과 박하우스의 무뚝뚝한 남성미를 고루 갖춘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에서는 사정이 다소 나아지지만 두세번 반복해서 듣고 있으면 역시나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일급 피아니스트의 탁월한 연주를 삼류 녹음으로 담은 음반.

- 월간 La Musica - 고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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