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베르크의 혁명이후, 침머만, 크세나키스, 그리고 펠트만 등 20세기 음악의 또 다른 혁신을 이룩한 작곡가들의 바이올린 음악을 담고 있다. 고난도의 기교와 철학적 이해, 깊은 통찰과 풍부한 상상력을 함축시켜야하는 침머만과 크세나키스의 작품은 청중을 압도하는 거대한 힘을 갖고 있기에, 카롤린 비트만의 연주로 감상한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정교하고 숨 막히게 펼쳐지는 절정의 명인기와 모톤 펠트만의 동양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정적음악까지도 카리스마로 빨아들이는 그녀의 집중력을 놓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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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권의 종교적인 신비로 가득한 음악을 많이 내놓은 ECM이 모처럼 현대음악 팬들이 환영할 만한 음반을 내놓았다. 그것도 슈만의 소나타로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 카롤린 비트만이라는 점에서 놀랍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여러 레이블에서 현대음악을 종종 녹음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대음악 클라리넷 연주자이자 독일의 중요한 현대 작곡가로 자리매김한 외르크 비드만의 누이라는 생각한다면, 이번 음반은 카롤린 비트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음반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봄의 환상’이라는 음반 타이틀을 본다면 출시 시기를 잘 맞추지 못한 듯하지만, 그녀의 본 모습을 들을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사실 수록곡 중에서 ‘봄’이라는 타이틀과 지접 연결된 작품은 미국 작곡가인 모튼 펠드먼의 <초스로스의 봄>(1978) 뿐이다. 펠드먼은 미국보다는 오히려 유럽에서 인기가 많다. 그의 음악은 미국적인 미니멀의 구성처럼 보이지만, 음과 침묵의 사이라는 심연의 계곡 속에서 부유하는 듯한 그의 음악 세계는 분명 유럽적이다. 연주자는 이 두 요소를 대비시키기 보다는 단 하나의 실체에 대한 양면성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모를 리 없는 비트만은 한 음 한 음을 음악이 아닌 순수한 소리의 근원에 접근하고 있으며, 텅 비어있는 듯한 공(空)의 이미지를 그린다.

이어지는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의 <바이올린 소나타>(1950)는 이와는 정반대로 견고한 성과 같은 작품이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음들은 감상자에게 생각의 틈을 주지 않는다. 비교적 초기의 이 작품은 이성적 작곡의 결과물이기에 그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지만, 60년 전에 작곡된 이 작품은 비트만에게는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으로 비춰지는 것 같다. 각 프레이즈를 다양한 아티큘레이션으로 표현하여 낭만적인 음악적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감상자의 의식을 압박하는 난해한 작품임에도 재미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듯 편안하게 들려준다.

그렇다면 ‘환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 다소 장난기 어린 작명법이지만, 이어지는 쇤베르크의 <환상곡, Op. 47>(1949)과 펠드먼의 곡에서 이름을 반씩 따온 것으로 보인다. (비록 1년 차이 뿐이지만) 유일한 20세기 전반의 작품이 이 곡은, 총천연색의 디지털 영화의 세대인 비트만에게는 잡티 많은 흑백 영화와 같은 아버지의 옛이야기와 같이 다가올 것이다. 치머만과 같이 활을 이용한 다양한 음색 표현과 아티큘레이션으로 제목과 같이 연주자가 생각하는 ‘환상’을 그린다. 만약 올레그 카간(Live Classics)의 쉴 틈 없이 강렬한 연주로 난해한 곡이라고 결론을 내렸다면 비트만의 연주는 그 오해를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현대음악 애호가라면 이 음반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마지막 곡인 크세나키스의 <디크타스>(1979)에 있을 것이다. 크세나키스는 수학적 모델에 의해 작곡을 하지만 그의 작품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소리의 정서가 있다는 데에 음악가로서의 위대성이 있다. 첫 피아노 반주부터 심상치 않은 이 곡은 바이올린의 부드러운 글리산도를 타고 (이미 작곡된 지 30년이나 지났지만) 새로운 음악 세계로 안내한다. 비트만은 전체적으로 곱고 공명이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거칠고 공격적인 소리가 미덕이었던 과거보다는 편히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 1986년에 녹음한 아르디티가 기교적인 외향적인 연주를 들려준다면, 비트만은 내용에 무게를 두는 내면적인 연주를 지향한다. 이러한 해석상의 차이는 시대적인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며, 21세기의 젊은 연주자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로 나타나고 있다. 비트만은 그 중에도 가장 전면에 부각되어있다.

- 월간 La Musica - 송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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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OLIN WIDMANN - PHANTASY OF SPRING/ SIMON LEPPER [펠드만, 침머만, 쇤베르크, 크세나키스: 바이올린 작품집 - 카롤린 비트만]